Q1.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은 주로 파리에서 머무르고 있어요. 동료 뮤지션들의 연주를 보러 가서 즉흥적으로 함께 연주도 하고, 새로운 뮤지션들과 만나면서 음악적 영감을 교류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물론 일이 있거나 연주가 있을 때 일본에 주기적으로 가기도 하고요. Q2. 먼저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즐겨 들으셨나요? 지금 표현을 빌리자면 저희 아버지는 그야말로 음악 분야 인플루언서였어요. 제가 10살 때부터 아버지가 뮤직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하셨는데, 연주자들이 연습도 하고 레코딩도 하는 그런 스튜디오였어요. 주로 연습을 위한 스튜디오였죠. 1980년대 일본에서는 팝과 락 밴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던 시기였기 때문에 스튜디오에 정말 많은 연주자들이 찾아왔죠. 아! 그런데 스튜디오는 도쿄가 아니라 제 고향인 니가타현 산조시에 있었어요. 꽤 시골이었죠. 그런데도 많은 스타 밴드들이 스튜디오를 찾았어요. 또 아버지는 스튜디오 운영을 하면서 블루그래스 밴드를 이끄셨는데 거의 매주 잼 세션을 하셨죠. 블루그래스 장르를 아시나요? 블루그래스 장르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레어한 장르인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자라왔고, 자연스레 뮤지션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항상 음악 듣기를 좋아했죠. Q3. 정말 음악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처음 악기를 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1973년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제 고향에 연주를 하러 왔었어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그의 방문이었죠. 아버지는 그의 엄청난 팬이었고,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그의 공연을 보러 갔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마일스 데이비스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만 해도 저는 축구처럼 밖에서 활동하는 것들에 빠져있는 사커 보이였거든요. 그런데 그 공연을 본 이후에 브라스 밴드를 관심 갖게 되었어요. “와 나도 저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바로 코넷이었죠. 저도 왜 제가 코넷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일스 데이비스 공연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서 브라스 밴드를 가입했고, 그곳에서 코넷을 배우게 되었어요. 트럼펫과 완전히 비슷하진 않지만 유사한 악기죠. 그런데 사실 전 좋은 학생은 아니었어요. 악보를 전혀 읽지 못했거든요. 사실 악보를 볼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냥 모든 걸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저 멜로디를 기억하고 그 다음 멜로디까지 연결해서 제 파트를 연주할 수 있었어요. 저한테는 듣고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직까지도 악보를 그리는 일이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ㅎㅎ 어쨌든 이렇게 악기를 처음 배우게 되었습니다. Q4. 그렇게 연주를 시작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전혀 좋은 학생이 아니었어요. 코넷부터 트럼펫까지, 악기를 배우고 있었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때 두 악기를 그만 두고, 전혀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도 아버지는 계속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스튜디오 영업시간 이후인 밤 11시부터는 그곳에서 제 마음대로 마음껏 연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2개의 밴드를 하기 시작했는데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었고, 코넷과 트럼펫이 아닌 일렉트릭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런지 그때 제 학교 성적이 진짜 안 좋았어요.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이 있었는데 모든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거죠. 그래서 대학 가기 전에 일 년을 더 공부해야 했어요. 그때 저와 계속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가 기타를 칠 줄 알았는데, 그 친구가 “너도 기타 한번 배워보는게 어때? 재즈 말고 포크 뮤직 말야.” 하고 권유를 했고, 그 시기에 또다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물론 노래도 같이 했죠. 그래서 결국 그렇게 다른 악기를 배우면서도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에 통과하게 되었고, 대학에 가자마자 바로 락앤롤 클럽에 가입했어요. 전 기타, 베이스, 드럼, 노래 등 모든 악기를 연주했죠. 그리고 난 후 대학교 1학년 끝날 무렵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어요. 바로 그때부터 다시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또다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Miles Davis (Rolling Stone/Getting Images)] Q5. 그럼 초창기에 영감을 준 연주자가 있을까요? 네, 마일스 데이비스요. 대학교 다닐 때 작은 레코드 샵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 재즈 섹션이 있었고, 너무 작은 샵이었기 때문에 재즈 관련 앨범은 20여종 밖에 없었어요. 그 중에 마일스 데이비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앨범이었어요. 리버사이드에서 나온 곡들로 구성된 앨범이었죠. 그 앨범을 사서 듣기 시작했는데 제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과는 전혀 달랐어요. 아까 말했듯이 제가 마일스의 공연을 보고 왔잖아요. 제가 알고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1970~80년대의 음악이었는데, 이 앨범은 그의 1950년대의 곡들이었고 그야말로 Straing Ahead 한 재즈들이었죠. 그렇게 그가 어릴 때는 Straight Ahead한 재즈를 즐겨 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와…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모든 트랙들이 좋았죠. 그때부터 중학교 때 연주하던 코넷을 꺼내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들을 카피하기 시작했어요. 카피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작업이었어요. 저는 모든 음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느 날, 한 친구가 제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을 카피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친구는 제 대학교 빅밴드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친구였는데, 그는 곧바로 저를 재즈 바에 데려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그가 피아노 트리오 구성으로 연주를 하던 재즈 바였는데 그때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을 함께 연주했죠. 그런데 연주를 마치고 나자 그 친구가 제게 말했어요. “너 완벽하게 마일스가 했던 연주를 하네?” 하고요. 그래서 제가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뜻이야?”하고요. 그가 제게 “몰라서 묻는 거야? 네가 한 마일스의 연주는 사실 그가 즉흥으로 연주했던 것이잖아.”라고 말했죠. “뭐? 이게 즉흥연주라고?” 이렇게 멋진 연주가 바로 즉흥연주였다니 너무나 놀랐어요. 그때 이후로 제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죠. 나만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이런 음악 장르가 있다니 말이죠. 너무 멋지지 않나요? 결정적으로 이때 저는 재즈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물론 여러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제 음악 활동의 중심은 재즈라고 할 수 있죠. 연주자는 온전한, 나만의 유니크함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마일스의 음악은 그걸 제게 가르쳐줬어요. 어떻게 나만의 독창적인 사운드와 연주를 가질 수 있는지를요. 그는 20살에도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그만의 사운드, 그만의 음악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른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다가도 다시 마일스의 음악을 찾게 될 만큼 그는 뭔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즈에서는 마일스와 다른 연주자들,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이들은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좀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제게 있어서는 마일스가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Q6. 마일스 데이비스 외에 또 영향을 연주자가 있을까요? 물론 다른 연주자들도 있어요.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 리 모건(Lee Morgan), 케니 도햄(Kenny Dorham) 그리고 역시나 쳇 베이커(Chet Baker)가 있죠. Q7. 한국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는 트럼펫 연주자 중 하나가 바로 쳇 베이커인데요.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쳇 베이커 또한 유니크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마일스와는 조금 다르죠. 마일스가 좀 더 강하고 유니크한 느낌이에요. 쳇 또한 마일스의 엄청난 팬이었죠. 1950년대에 그 둘이 LA에서 만났을 때 쳇이 엄청 긴장했다고 하잖아요. 그치만 쳇 역시 뛰어난 트럼페터였어요. 그가 노래를 하기 이전부터 트럼펫 연주로 잘 알려져 있었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즈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재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일본의 재즈 매거진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때 그의 앨범 <Sings>를 처음 알게 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가 트럼펫 연주와 노래를 모두 하는 것을 보고 저 또한 둘 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원래도 노래를 즐겨 했으니까요. 그래서 쳇의 연주로 스탠다드 재즈 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살펴봤던 곡이 <But Not For Me>였어요. [TOKU (Pigari/Getting Images)] Q8. 이렇게 쭉 처음 재즈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 악기를 접하게 된 순간 등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아직 플루겔 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플루겔 혼이라는 악기는 언제 접하게 되셨나요? 플루겔 혼이라는 악기는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은 없었어요. 그치만 많은 재즈 앨범의 뒷면 크레딧을 보면 플루겔 혼 파트가 적혀있었죠. 예를 들면, “프레드 허버드(트럼펫, 플루겔 혼)” 이런 식으로요. 특히 연주자들이 발라드를 연주할 때 플루겔 혼을 활용하는 것 같았어요.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트럼펫 사운드에서 확실히 달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트럼펫보다 훨씬 부드러운 사운드였죠. 대학교 2학년 당시에 빅밴드에서 리드 트럼펫을 연주하던 친구가 플루겔 혼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친구에게 “이거 내가 한 번 연주해봐도 될까?”하고 물어봤어요. 그는 흔쾌히 악기를 내어줬죠. 그의 플루겔 혼을 빌려서 처음 연주한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저 한 음만 소리냈는데 소리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때 플루겔 혼이라는 악기에 빠지게 되었죠. 그래서 바텐더로 바에서 몇 달 동안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도쿄에 있는 악기점에 가서 처음으로 야마하 플루겔 혼을 샀어요. 그때 이후로 무대에서 트럼펫보다 플루겔 혼을 더 많이 연주하게 된 것 같아요. Q9. 그럼 초창기 활동을 시작할 때 쯤 기억에 남는 연주가 있을까요? 네. 대학을 졸업할 때쯤부터 파트타임으로만 일을 했어요. 비즈니스 맨처럼 고정 시간이 정해진 레귤러 잡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당시 제 친구들은 대부분 그런 일을 원했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그저 음악이 목표였죠. 그래서 일하기 시작한 곳이 오차나미즈 지점 디스크 유니온이었어요. 도쿄역에서 아주 가까운 샵이었죠. 얼마나 일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의 1년 동안 낮 시간에는 디스크 유니온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블루노트 도쿄 근처에 있는 바에서 일했어요. 그 바에는 재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곤 했어요. 디제잉을 하기도 하고, 재즈를 연주하기도 하면서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놀곤 했죠. 이 바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잼을 열곤 했고, 그때 당시에 뉴올리언스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베이시스트 노리히데 시오타(Nori Shiota)와 함께 했어요. 노리히데 뿐만 아니라 많은 뮤지션들이 자정이 지나 밤새도록 함께 연주하고 시간을 보냈죠. 블루노트 도쿄에서 연주한 연주자들도 잼 세션에 오곤 했어요.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어요. 그렇게 밤을 새고 집에 오면 보통 아침 6시 정도 되곤 했어요. 그러면 3시간 자고 다시 파트타임 일을 하러 가야 했죠. 그때가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Q10. 평소에 술을 안 드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도 술을 안마시고 그렇게 밤새 연주를 하고 일을 하셨어요? 네, 물론 다들 술을 마셨지만 저는 한 잔도 안 마시고 그냥 그 시간을 즐겼어요. 너무 재밌었거든요. ㅎㅎ Q11. 와.. 대단하시네요 ㅎㅎ 그럼 잼 세션 말고도 기억에 남는 연주가 있을까요? 네. 저랑 동갑이면서 노리히데의 친구이기도 한 색소포니스트 시노부 이차자키를 만났을 때였어요. 그와는 작년에 블루노트 도쿄에서도 함께 연주했고 여전히 가까이 지내는 친구 중 하나인데요. 그가 막 미국에서 돌아온 해에 그를 처음 만났는데 여전히 열정이 넘쳤고, 엄청난 연주를 보여줬어요. 정말 멋진 연주자였죠. 그가 제게 도쿄 최고의 재즈 클럽이라 할 수 있는 “Body And Soul”에서 함께 연주하자고 했어요. "Body And Soul"에는 정말 실력있는 연주자들만 모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긴장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그는 “토쿠! 괜찮아, 걱정하지마. 츠요시는 누구든 환영해.”라고 말했죠. 아! 츠요시 야마모토(Tsuyoshi Yamamoto)는 선배 재즈피아니스트인데 지금도 가끔 연주하곤 해요. 어쨌든 베이스에는 노리히데가 있었고, 긴장됐지만 클럽으로 향했죠. 클럽의 주인인 쿄쿄 마마(Kyokyo Mama)가 연주 끝나자마자 제게 와서 “혹시 3월 23일에 시간있어요?” 하고 물어봤어요. 처음에는 그 질문이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왜냐면 그때가 1월이었는데 왜 3월 스케쥴을 물어보나 싶었죠. 그래서 계속 어리둥절해 했더니 그녀가 “내가 일정을 물어보는 이유는 긱 스케쥴에 당신을 넣고 싶어서인데요.”라고 하더라구요. 그제서야 이해가 갔죠. 그래서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했어요. 그렇게 “Body And Soul”에서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정말 잊을 수가 없는 날이에요. 이제 그녀는 83세인데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죠. Q12. 이런 연주들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셨을 것 같아요. 네,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1998년부터 피아니스트 츠요시 야마모토의 게스트 트리오로 클럽 긱을 시작했어요. 아마 이제 그의 나이는 76세 정도 되었을거에요. 매달 그와 연주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가 제게 말했죠. “재즈는 자유로운 음악이야. 너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네가 뭔가 잘못 연주를 한다거나, 실수를 한다해도 내가 네 뒤에서 받쳐줄 테니까 하고 싶은 연주를 마음껏 해봐.” 하고 말이죠. 그와 연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Album "Everythimg She Said" (Discogs /Getting Images)] Q13. 그럼 그렇게 라이브 연주를 하다가 어떻게 데뷔 앨범을 준비하게 되셨나요? 클럽 라이브 연주를 할 때 항상 같은 자리에서 연주를 보던 관객이 있었어요. 그는 매주 일요일에 진행되는 3시간짜리 Tokyo FM Radio Staition의 DJ였는데 아마 제 기억에 그는 거의 매일 밤 클럽에 찾아왔던 것 같아요. 그는 연주를 마친 제게 항상 이렇게 얘기했어요. “네 연주는 마치 토니 베넷 같아!”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제게 연주하는 날 말고 낮에 한 번 만나자고 했죠.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서요. 그래서 다이칸야마 근처 카페에서 만났는데, 그는 제게 뉴욕의 소니 뮤직 레이블에 저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아직 저는 그런 수준의 연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웠어요. 쇼 비지니스 산업에는 정말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사람도 조심해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정확히 바로 다음 달에 실제로 그는 소니 재즈 레이블의 아주 유능한 빅 프로듀서였던 야사하치와 함께 제 공연에 왔어요.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레이블에 있으면서 행크 존스,(Hank Jones), 에레나 테라쿠보(Erena Terakubo) 등 많은 뮤지션들과 작업했던 유명한 프로듀서였죠.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연으로 저의 첫번째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때 저는 소니 레이블과 자유로운 조건의 계약을 하게 되었어요. 앨범 준비를 하기 이전에 1년 동안 트레이닝 기간을 거치고, 몇몇 공연들을 하는 동안 저는 계속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1999년 9월에 저의 첫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뉴욕에 갔어요. 그리고 앨범은 2000년 1월, 아버지 생신이 있는 주에 발매되었죠.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Body And Soul"에서 열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그리고 그 다음 달에는 대략 200명 정도가 관람 할 수 있는 홀에서 공연을 진행했죠. 그때 당시의 제게는 너무나도 큰 무대였어요. 그렇게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Q14. 그럼 데뷔 앨범을 준비할 때 함께 했던 연주자들은 어떻게 처음 모이게 되었나요? 아! 아까 말했던 라디오 DJ 있잖아요. 그가 제 첫 번째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였고, 공동 프로듀서로는 타카 츠카마가 있었어요. 앨범 작업을 하러 뉴욕에 갈 때 그들과 함께 갔죠. 어느날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제 첫 번째 앨범에 함께 해 줄 연주자로 누가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럼 피아노에는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칙 코리아(Chick Corea), 케니 바룬(Kenny Barron)이 좋을 것 같아.”라고 그들이 말했죠. 그래서 제가 “누구 앨범 세션을 말하는거야?” 라고 다시 되물었더니 “네 첫 앨범 말하는거야.”라고 하더라구요. 아니, 허비행콕, 칙 코리아라니…믿을 수가 없기도 하고 말이 안 되잖아요?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해요. 왜 제가 그때 좋다고 말하지 못 했을까요. 그 당시 그들은 정말 그렇게 멤버 구성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자본도 충분히 있었고, 연결고리도 있었어요. 그치만 그때의 저는 녹음을 하기 위해서 처음 보는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한다는 게 또 그렇게 멋진 뮤지션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함께 할 연주자들을 찾았고, 녹음까지 마쳤죠. Q15. 데뷔 앨범 이후에도 쉬지 않고 앨범 작업을 하셨는데요. 네, 그동안 끊임없이 앨범 작업을 했어요. 론 카터(Ron Carter), 케니 바룬(Kenny Barron),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irabassi), 사라 랭크만(Sarah Lancman) 등 정말 많은 연주자들과 함께 했죠. 사실 활동 초반에 베스트 앨범처럼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올 뻔 하기도 했어요. 소니 뮤직 레이블과 함께 일할 당시에 티비 커머셜에 대한 계약도 있었고, 저라는 아타스트를 소개하고 앨범을 판매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레이블 관계자들은 제 베스트 곡들로 이루어진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하길 원했어요. 그렇지만 데뷔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저로써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죠. 앨범마다 각각의 스토리가 있고, 스타일이 있는데 베스트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이 어쩐지 제 커리어가 끝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베스트 앨범은 나오지 않았고, 중간에 꽤 많은 앨범 작업을 했어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를 헌정하는 앨범도 만들었고, X-Japan, Zeebra, 마키 오구로(Maki Ohguro) 등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와 협업을 했어요. 그렇게 더 많은 활동을 한 이후에 2003년이 되어서야 베스트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죠. 정말 끊임없이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BESTOKU Album Release Live @Blue Note Tokyo] Q16. 이렇게 일본에서의 많은 활동을 뒤로 하고, 요즘 파리에서 머무르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본에서는 솔로 활동을 비롯해 힙합, 팝, 제이팝, 락 등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과 콜라보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죠. 제가 그동안 가보지 못한 나라에 가서 또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음악적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말이죠. 정말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파리는 유럽의 중심이라 할 수 있고, 샹송부터 아프리카 음악, 미국에서 건너온 재즈음악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어우러져 있는 도시죠. 게다가 파리에는 뮤직 콘서바토리들이 많이 있는데 저도 가끔 콘서바토리에 가서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서 연습하기도 해요. 사실 파리는 생활하기에 물가가 좀 비싸지만 그래도 계속 머무르고 싶어요. 그래서 파리의 새 아파트를 구했죠. 어서 이곳에 정착해서 파리가 주는 영감을 받아 새로운 곡을 쓰고 싶어요. 그게 지금 가장 원하는 일이에요. Q17. 그럼 파리 다음에 가고 싶은 도시가 있으신가요? 음… 사실 제 나이가 벌써 51세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다른 도시 생각보다는 파리에 머무르는 걸 집중하고 싶어요. 물론 파리에서 다른 유럽에 가는 것은 쉽죠. 이미 스위스, 루마니아, 벨기에, 런던, 남프랑스 등에 다녀오긴 했어요. Q18. 이렇게 파리를 비롯해 다양한 나라에서 활동하려면 언어 스킬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1993년 대학교 2학년 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Language Exchange Program이 있었어요. 이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유익했죠. 거의 일 년 동안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 방을 쓰면서 지내며 영어 실력을 쌓았어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게 있는데요. 그 친구와 방을 함께 쓰기 이전에 학교 관계자들은 제게 개인적인 질문들을 했어요. 취미가 무엇인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같은 것들을 물어봤죠. 그때 제가 대부분 “재즈”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관계자들은 저와 함께 방을 쓸 친구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친구로 정해줬죠. 줄리앙이라는 친구였어요. 서로 관심사가 같아 잼도 하러 같이 다니고, 여러 스탠다드 곡들, 블루스 등을 연주했죠. 그러다 베이시스트, 색소포니스트 친구가 모여서 쿼텟이 되었고, 결국에는 드러머까지 모여서 퀸텟이 되었어요. 그렇게 줄리앙과 만든 팀으로 대학교 내에 있는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연주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이런 경험이 제게는 너무나 큰 영향을 주었고, 영어를 시작하면서 재즈 연주 스킬까지 높이는 계기가 되었죠. 너무나도 멋진 계기 아닌가요? :) Q19. 그럼 요즘 파리에서 함께 연주한 연주자 중에 기억에 남는 연주자가 있을까요? 최근에 재즈일레븐(Jazz Eleven) 레이블의 신예 재즈피아니스트인 마크 프라이어(Mark Prior)가 기억에 남아요. 벨기에에서 함께 연주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Giovanni Mirabassi, TOKU (Gazzetta di Rome /Getting Images)] Q20.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irabassi)와는 여러 작업을 함께 하셨죠. 어떻게 처음 함께 하게 되었나요? 지오바니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오사카에서였어요. 그가 일본 레이블과 함께 일할 당시여서 일본에 자주 왔고, 그때마다 함께 만나서 어울리곤 했죠. 그리고 제가 파리에 처음 온 건 2007년이었는데, 그때도 그와 같이 연주하곤 했어요. 그렇게 지오바니와의 인연이 쭉 이어졌고 2017년에 그가 "재즈일레븐(Jazz Eleven)"이라는 레이블을 사랑 랭크만(Sarah Lancman)과 함께 설립했죠. 사라 랭크만은 재즈 일레븐의 공동 설립자이자 보컬리스트인데 지오바니가 그녀의 앨범 프로듀서였어요. 그 둘은 새 앨범에 함께 콜라보 할 연주자를 찾고 있었죠. 사라는 그레고리 포터(Gregory Porter) 스타일의 연주자를 원한다고 말했ㄱ 그때 지오바니가 사라에게 제 음악을 들려줬는데, 사라가 바로 저와 연주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오바니가 제게 메시지를 보냈죠. “내가 프로듀싱하고 있는 보컬리스트 사라가 너랑 작업하고 싶대. 파리로 와”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냥 바로 오케이 했어요. 그렇게 제가 파리에 처음 온 지 10년 만에 다시 파리에 오게 된거예요. 앨범 녹음 전에 사라, 지오바니와 함께 여러 공연을 했고 이후 앨범 녹음을 하러 태국으로 향했어요. 이 앨범은 그해 가을, 겨울 쯤에 발매되었죠. [Album "Toku in Paris" (Jazz Eleven /Getting Images)] Q21. Giovanni Mirabassi와 함께 작업한 <Toku In Paris> 앨범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사라의 앨범 작업 후에 그들이 제게 말했어요. “아무래도 유럽을 메인으로 하는 너만의 단독 앨범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래? 못할 것 없지!”하고 말했어요. 그래서 <Toku In Paris>를 작업했고, 이 앨범은 유럽을 메인으로 한 공식적인 첫 번째 앨범이에요. 앨범 레코딩에는 알토 색소폰에 피에릭 파흐동(Pierrick Pedron), 드럼에 앙드레 세카켈리(André “Dédé” Ceccarelli), 피아노에 지오바니 미라바시가 메인 연주자로 참여했고요. 앨범 출시되고서는 그야말로 기뻤어요.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벨기에, 스위스, 런던, 남프랑스 등에 공연을 다녔죠. 그런데 그 이후에 펜데믹이 왔어요. 파리에서의 커리어를 쌓아갈 시기였는데 거의 3년 반 동안 그대로 멈춰있어야 했어요. 너무나도 아쉽지만... 어쨌든 결국 작년 9월에 이렇게 다시 파리에 왔어요. Q22. 언급하신 Toku In Paris 앨범은 단 2주만에 완성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맞아요. 녹음을 시작하기 전 진행했던 공연, 그리고 녹음, 믹싱, 사진 촬영 등 모든 것들을 2주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이 앨범을 작업할 당시의 에피소드가 참 많은데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앨범 작업할 때 파리는 정말 무더웠어요. 다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저는 소고기 타르타르를 주문했죠. 그동안 타르타르를 먹을 때 한번도 문제가 된적이 없었는데...다음날 식중독에 걸렸어요. 앨범 쟈켓을 위한 사진 촬영이 있는 날이었는데 말이죠. 아마 촬영을 하는 내내 화장실을 15번 이상 다녀왔을거예요. 정말 힘들었죠.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녹음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 열이 나진 않았지만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다들 제 걱정을 많이 했죠. 그래서 제가 첫 곡은 좀 느린 템포의 곡부터 시작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다들 배려를 많이 해줬고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어요. ㅎㅎ 그리고 또 한 에피소드로는 앨범 마스터링을 마지막으로 진행하던 날 저녁에 저는 도쿄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어요. 그치만 작업이 오후 5시까지 끝나지 않고 있었고, 함께 옆에서 작업하던 사라가 "토쿠, 이제 진짜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이야."라고 말했죠. 그래서 정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스튜디오를 떠나 아슬아슬하게 공항으로 향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마스터링이 정말 거의 끝날 때까지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정말 여러모로 그때의 일들은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TOKU European All Stars Official Teaser] Q23.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간이 모자란 적은 처음이에요. 두 번이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죠! 벌써 마무리 할 시간인데요.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앞으로도 파리에서 더 많은 연주자들과 다양한 연주를 할 계획이에요. 물론 올해 9월, 10월에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연주가 있고요. 다양한 연주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Q24. 마지막으로 아트렛 구독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아트렛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토쿠입니다. 이렇게 아트렛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전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하루 빨리 한국에 다시 가서 여러분들과 멋진 공연으로 만나고 싶어요.그때까지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Greetings_TOKU ]